이미지를 떠난 이미지

사진은 존재의 참에 대한 어느 명제를 이미지의 형태로 능숙히 증명해 왔다.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누차 강조한 ‘존재했음’의 문제는 이미지의 본성에 내재하는 과거 시제와 밀착되어 있다. 그러나 사진이 과거에서 기인하여 한때의 현존에 관한 명징한 참에 이르기 위해서, 카메라는 늘 현재에 놓여 있어야 한다. 장치와 이미지가 공존할 수 없는 이 시제의 간극은 사진을 둘러싼 몇 가지 분열증적 존재 방식의 일례에 불과하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 뿐 아니라, 보는 자와 보이는 자, 도구와 이미지, 순간과 기억, 현존과 부재, 그리고 이미지의 시대에 관한 복잡한 관계도를 그리며 눈과 존재의 철학을 만들어 간다.

안진균은 이 같은 사진의 복잡성을 자신이 경험한 삶의 양상과 중첩시키며 성찰하는 작가이다. 우리는 그가 찍은 이미지와 마주하지만, 이것은 렌즈와 시선이 벌인 미묘한 운동을 거친 최종의 결과물이다. 바르트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어머니 사진을 계기로 사진의 본질에 다가갔듯이, 안진균은 대상과 사진 사이의 관계를 혈연의 불가피성으로 치환한다. 그러나 이렇게 구축된 단단한 응시의 구조는 시선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파기로 이어진다. 이것은 일종의 진화이다. 즉 사진을 둘러싼 접점들의 긴장을 이미지의 메커니즘으로, 가족의 직계 형태를 이미지의 생산 조건으로 삼아 세심하게 직조된 그의 작업이 제어할 수 없는 노이즈로 인해 변이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진화 과정 속에서, 나는 플루서(Vilem Flusser)가 전통적인 철학의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말한 사진의 구체성과 성찰의 역동성을 발견한다. 사진의 존재 방식 속에 농밀하게 구성된 시간과 공간, 주체들 사이의 교차 지점은 결국 우리의 존재 방식에 관한 함의를 지닌다. 따라서 안진균의 작업은 사진이 현실과 맺는 전통적 방식을 넘어, 사진으로 파생되는 여러 항의 등식들을 존재론의 축도에 도달시킨다. 그것은 필시 예측할 수 없는 상실과 맞닥뜨리는 일이며, 사진에 관한 부등식의 난제와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Villa of the mysteries
안진균은 2012년 작 (이하 )를 기점으로, 보이는 자와 보는 자 간의 관계를 제스처에서 시선으로 강력히 수렴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그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관계의 반목을 사진 속의 극적 몸짓과 배치를 통해 가상의 화합에 이르고자 했다. 이것은 실현될 수 없는 자유가 사진을 통해 구현되는 것, 다시 말해 가상의 세계를 조직하는 자율의 힘을 빌려 실현한 극복의 서사이다.

여기에는 삶과 죽음, 부모와 자식 간의 필연 등이 이미지의 모방, 닮음, 그리고 소멸에 관한 어휘로 구성된다. 예컨대 에서는 일상의 주 무대인 거실을 부모의 묏자리와 교차하며 삶과 죽음의 간격을 무화시킨다. 사진 속에서나 가능한 이러한 초월성은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의 양면이 공존하는 생의 형식과 피사체를 거울의 상으로 도치하여 순간을 지속으로 뒤바꾸는 사진의 속성 사이의 오려 내기와 덧붙이기를 통해 나타난다. 특히 이미지의 배경은 묘지와 거실이라는 극단의 특성을 모두 가진 미스터리한 거주지인 동시에 사진의 편집과 삭제가 일어나는 이미지의 장소로서 이중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주지는 에서 피사체의 얼굴로 확대되고 실제 공간의 구축으로 확장된다. 전형적인 정면 구도로 찍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미지는 평면을 떠나 입체의 상태로 나타난다. 는 똑같은 사진이 서로 좁게 마주보는 공간으로, 은 T자의 구조물에 영사된 이미지가 분할되도록 설치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기이한 거주지가 이번에는 얼굴이라는 장소이자 이미지의 구조물로 변화된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공간은 모두 인물의 시선이 자신을 응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기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이 모순의 구조는 시선을 둘러싼 어떤 실존적 유린에 대해 질문한다. 안진균은 한 인터뷰에서 피사체의 얼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작업은 얼굴을 장소로 인식합니다. … 셀 수 없는 긍정적이고 때로는 부정적인 기억의 기폭제가 부모님의 얼굴에 마치 촘촘한 지뢰밭과 같이 매설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그런 점에서 얼굴은 사진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뷰파인더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 누군가의 시선이 한 장씩 차곡차곡 쌓여 있는 기억의 장소로서 말입니다.”


결국 속의 시선은 피사체의 시선이기 보다, 피사체와 똑바로 마주선 이의 시선을 투영한다. 부모의 얼굴은 작가의 시선이 누적된 기억의 장소이며, 그 이미지의 영토가 분할될 때에 가능한 자기 응시는 렌즈 너머의 시선으로 빚어진 것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보편의 시선을 벗어나 만들어진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혼재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로 만들어진 허상의 구조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안진균의 작업은 카메라 앞의 피사체를 거울상처럼 비추는 사진의 본능이 오히려 시선을 유린하고 허구에 가담할 때, 렌즈 뒤에 있는 이의 시선은 점차 선명해진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서 부모의 모습은 그들의 현존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사진을 찍는 자신 안에 축적된 부모의 이미지를 성찰해 가는 과정이며, 가족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방과 독립의 이원성을 탐구해 가는 대상인 것이다.

Hanged Man
나츠메 소세키는 「모방과 독립」이라는 강연에서 ‘나’는 인간을 대표하는 동시에 나 자신을 대표하고, 인간은 이미테이션(imitation)과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양면성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피사체의 이미지는 존재의 모방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닮음을 통과할 때야 비로소 알 수 없는 타자의 시선들 속에 홀로 독립한다. 그러나 이미지의 특성에 내재한 이 유연한 순차와 달리, 삶의 순차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은 사진이 지닌 이미지의 파생 과정이 어쩌면 과거와 현재의 고리를 변형시키는 열쇠가 되리란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자신이 피사체가 되어 부모가 있던 장소에 자리한다. 모방과 독립의 한가운데에 이미지로 매달린 것이다. 직계의 순차에서 부모의 모습을 축적해 가던 작가는 이제 또 다른 타자의 시선 안에 축적되어야 할 입장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반복되는 모방을 탈피하기 위해, 그는 사진이 실제 대상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거치는 뒤집기, 즉 렌즈를 통과한 상(像)의 반전에 주목한다.

사진의 이미지는 대상을 온전히 모방하기 위해 역전하고, 그래야만 독자적인 개체가 된다. 이런 이유로 피사체인 작가는 세계의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선다. 아이의 즐거운 놀이 장소에서 거꾸로 버티고 있는 인물은 렌즈를 통과해야만 정상의 방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죽음이라는 사진의 본질에 대한 복기를 수반한다. 디딜 곳 없이 세상에 매달린 인물의 제스처는 닮음의 골을 뒤집고, 아들을 완전한 개체로 해방시키기 위해 기꺼이 이미지 속의 죽음을 택한다. 우리가 부모나 자식을 선택할 수 없듯이, 사진의 이미지가 역으로 대상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탄생의 문제에 비해 어쨌든 소멸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같이, 사진은 죽음으로 현존을 증명하는 대신 이미지라는 자유의 영역으로 또한 나아간다. 그렇게 에서 고통의 모방은 차단되고 독립된 시선이 탄생하는 이미지의 토템이 구성된다.

요컨대 베르크손은 신체를 둘러싸고 있는 대상들에 실제적이고 새로운 작용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대상들에 대해 특권적 위치를 점해야 하며, 이것은 이미지가 이미지들에 의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만일 이것이 신체의 기능적 행동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이미지의 세계는 그것을 객체로 만들어 버리는 시선의 작용에 의해 우리의 실존과 연동될 수 있다. 그리고 사진의 작용 방식을 모방하는 안진균의 작업 형태는 이미지로 지각되는 외부 세계에 이미지로 개입하여 그것을 변형시키려는 능동적 의지를 토대로 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그러한 구조가 함몰되는 시각 장치의 기술적 지점 앞에서 필연적인 변화의 진전을 거친다.

Slice
언제부턴가 사진의 고전들이 제시한 여러 개념에 대한 재고가 불가피해졌다. 사진의 기술적 상태가 이전의 구도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확장, 희석되면서부터이다. 정보화 시대 이후,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는 그것 사이의 격차를 일소하는 대신, 기호화된 기술적 코드로 치환된 단위를 본질로 갖는다. 보드리야르는 매체 자체에 대한 정의와 명확한 행위를 지시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매체의 함몰(implosion)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진의 매체적 특성을 존재론적 함의와 교차하며 탐색해 가던 안진균의 작업 방식은 매체의 구조적 전환 앞에서 또 한번의 성찰과 마주한다.

그것은 매우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2017년 그가 가진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복구 불가 판정을 받았다. <20150208>은 작업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닌, 개인적인 사진이 저장된 폴더명이다. 가족의 사적이며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이미지들은 사진의 전통적인 기념의 역할, 즉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기록 파일로 아카이빙 한 것이다. 대상과 시간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기억을 대치하고 촉구하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사진은 디지털 방식으로의 전환 이후에도 능란히 그 기능을 충족시켜 왔다.

그러나 과거 사진의 필름이 급작스러운 노출로 인해 영구 훼손될 수 있듯이, 디지털 방식 이후의 사진 역시 유사한 버그의 치부를 갖는다. 과거의 사진이 빛과 대기를 근거로 하여 맺힌 상의 화학적 결과물로서 동일한 요소에 의해 손상되었다면, 오늘의 사진 역시 디지털 신호로 저장된 비트의 결과물로서 역시 동일한 요소의 오류에 의해 손상된다. 안진균은 자신의 데이터를 급습한 버그에 분노하면서도, 그 이미지의 상태가 인위적인 작가의 의도로는 가질 수 없는 감각을 전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이미지를 가혹히 해체하지만 그 어떠한 의도도 없다. 의도는 시선과 신체를 거친 행위로 특정한 목적을 갖지만, 장치의 오류 속에서 나타난 붕괴의 노이즈는 오류 그 자체일 뿐이다. 보드리야르가 외적 동기가 없는 느릿한 공포라고 칭한 이 함몰은 저장의 격렬함과 더불어 파기까지도 특수한 강렬함 속에 놓는다. 불현듯 나타나지만 상존하는 그 공포는 '저장'이라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그 기능을 상실할 때 나타난다.

따라서 저장된 이미지의 균열은 그간 안진균이 해 온 작업 방식에 갑작스런 방향 전환을 가져왔다. 작가는 파괴된 파일 앞에서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가 되어, 과거의 기억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이미지의 반역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 반역은 그가 사진과 벌여온 존재론적 대결의 과정을 냉담한 승리로 이끈다. 이는 시각적 인식에 대한 파기이자, 동시에 이미지의 실체를 환기하는, 이미지를 떠난 이미지인 것이다. 이로써 사진의 역사적 존재 근거인 기록과 보관의 기능이 침식되고, 모방과 독립에 대한 사진과 시선 사이의 계보가 흩어진다.

일상의 순간 속에 포착한 <20150208> 연작의 미세한 연속 움직임에서 눈은 모두 가려지거나 감거나 숨겨져 있다. 그리고 무력해진 시각의 체계의 후퇴 속에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노이즈의 균일한 픽셀과 함께, 복제라는 본연의 기능마저 허물어뜨리고 있는 오류의 칼질이다. 관객은 이것을 작가의 의도로 막연히 가늠하며 고요한 전시장에서 사진과 마주한다. 그러나 전시장 정가운데 놓인 의 렌즈에 눈을 대는 순간, 날카롭게 안구를 가르는 브뉘엘의 치명적 일격이 나타난다. 이 당혹의 순간, 우리의 시선을 도려내는 것은 이미지의 파열음이며, 그것은 조각난 안진균의 사진이 시각 경험의 붕괴에 대한 환유임을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작가가 의도했는가의 여부를 떠나, 'Slice'라는 시각적 불능의 상태는 에서 시선의 관계를 해석하기 위해 구축한 공간과 에서 뒤집힌 이미지를 통해 모방과 독립의 이중성에 대해 고군분투한 경로를 일종의 해방 상태로 진화시킨다. 이 우연한 해방감에는 시각 경험의 재인식에 대한 진화를 포함하고 있다. 조너선 크래리는 모든 시각 이미지의 순환과 수용은 단일 매체나 시각 재현 형식에 주요한 독립적 정체성을 부여하지 않고, 새로운 지각의 요소는 관찰자를 재위치시킬 뿐이며, 새로운 지각의 구성 요소는 늘 다시 인식된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오늘날 이미지의 본성에는 시뮬라크르의 질서마저 파기하는 오류의 타격이 잠재되어 있으며, 매체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지각의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분명하다. 의도도 조작도 없이 불현듯 나타난 시각 체계에 대한 예리한 절단은 안진균이 이미지의 전복을 통해 체제에 대한 도전을 이어온 저항의 요인이 점차 다른 문맥으로 이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점에서 그의 《Slice》는 거울 없이 비치는 현존의 이미지이며, 결코 시선의 교차나 죽음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사진에 관한 변화된 참의 구도 속에서 안진균의 존재론적 반추는 새로운 길목에 놓인 것이다.

구나연 ㅣ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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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Departed from Image

Photography has adroitly proven the certain proposition on the verity of existence, through the form of image. The issue of ‘having existed’ that Roland Barthes persistently stressed in Camera Lucida is closely weaved into the past tense that is innate in the nature of images. However, in order for photography to arrive at the clear verity of an erstwhile existence based on the past, the camera has to always be positioned in the present. This gap between the two tenses, which makes it impossible for the device and image to coexist, is merely one instance of the several schizophrenic means of being that surrounds photography. It paints the complex map of relationships in the era of image, tracing the relationship between not only the present and the past, but also the seeing and the seen, tool and image, moment and memory, and existence and absence, generating the philosophy of the eye and the being.

Jinkyun Ahn is an artist that contemplates such complexity of photography as he overlaps it with his own experiences of life. We face the images that he captured, but they are the final product of the subtle dynamics between the lens and the gaze. Just as Barthes had approached the essence of photography through the photo of his mother dating from before his birth, Ahn substitutes the relationship between object and photography for the inevitability of blood ties. However, the sturdy structure of the gaze thus constructed leads to a destruction that nullifies the gaze itself. This is an evolution of a sort. Delicately woven together by employing the tension between various interfaces of photography as the mechanism of images and also utilizing the structure of family lineage as the condition of image production, Ahn’s work proceeds toward a field of mutation prompted by uncontrollable noises.

Throughout this process of evolution, I witnessed the specificity of photography and dynamics of contemplation that Vilém Flusser has acclaimed as superior than the traditional means of philosophy. The intersection between time, space, and subjects, densely constructed in the existing means of photography, embraces an implication of our own means of existence. Ahn’s work therefore transcends the traditional relationship between photography and reality, directing the equations between various clauses derived from photography toward a scaled ontology. This is without a doubt an act of encountering the unpredictable loss, and also an act of encountering the conundrum of inequations on photography.

Villa of the Mysteries
Starting from Villa of the mysteries - where is (hereinafter where is), the work of 2012, Ahn seems to have powerfully redirected the focus of relationship between the seeing and the seen from gesture to gaze. Before then, he had sought to virtually harmonize the enmity between impossible relationships of reality through dramatic gestures and arrangements within photography. It was a manifestation of unrealizable freedom through photography; in other words, a narrative of overcoming obstacles by borrowing the power of freedom that constructs the virtual world.

Here, the inevitability between life and death, or parent and child, is constructed with the vocabulary related to the imitation, similarity, and annihilation of image. For instance, in Villa of the mysteries – Decalcomanie, Ahn nullifies the gap between life and death by crisscrossing the living room, the main stage of the daily life, and the grave site of his parents. Such transcendence, available only inside photography, is manifested through the cut and paste of photography’s trait of transforming a transient moment into eternity by substituting the form and subject of life, in which the two extremes of life and death coexist, with a mirrored image. In particular, the background of the image is a mysterious habitation embracing the extreme natures of graveyard and living room, and at the same time serves the double function as the site of image where editing and deleting photograph takes place.

Such habitation is enlarged as the face of the subject in Where is, and expanded into the construction of an actual space. The image of the father and mother, captured via typical frontal composition, escapes the two-dimension as it is manifested as a three-dimensional state. where is dad is installed in a space in which two identical photographs face one another over a narrow corridor, and where is mom is installed to have the image projected on a T-shaped structure be separated. The peculiar habitation where life and death coexist is here transformed into a structure of both the image and place of face. This space is designed for every figure’s perspective to gaze at oneself. This contradictory structure, in which one looks at oneself through one’s own eyes, questions the certain infringements around perspective. Ahn speaks of the subject’s face as below in an interview.

“My work perceives the face as a place. … I felt that the triggers for numerous positive, and sometimes negative, memories are buried in my parents’ faces as if a dense minefield. And in that sense, I thought that the face is similar to a camera. As a place of memory, layered with the gaze of someone looking out into the world through the viewfinder.”

The perspective inside where is is after all not so much the perspective of the subject as a projection of the perspective of the figure standing straight against the subject. The faces of his parents are the sites of memory where the artist’s gaze is accumulated, and the navel-gazing that becomes possible when that territory of image is divided is molded through the gaze on the other side of the lens. The mixture between the seeing and the seen, generated by transcending the general perspective of looking at oneself through the mirror, cannot but be a delusional structure created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images. Ahn’s work therefore presents the paradox that the perspective of the figure behind the lens becomes clearer when the nature of photography to reflect the subject in front of the camera as a mirrored image rather violates the perspective and takes part in the fabrication. In his work, the image of his parents does not serve to celebrate and remember their existence; it is the process of contemplating the image of his parents that is accumulated in him, the self that is taking the photograph; it is the object that investigates the dualism of imitation and independence that takes place within family relations.

Hanged Man
In a lecture titled “Imitation and Independence”, Natsume Soseki explained that “I” represents both humans and me, and that humans embrace the dualism of imitation and independence. The image of the subject is manifested in the form of imitating the being, but it is only when passing through that similarity that it becomes independent within the perspectives of anonymous others. However, unlike this flexible sequence innate in the nature of images, the sequence of life is not so simple.
Hanged Man starts from the hypothesis that the image production process of photography may be the key to transforming the link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In this work, the artist himself becomes the subject, standing where his parents had once stood. He hangs as an image in between imitation and independence. Having accumulated the image of his parents in the lineal sequence, the artist becomes the object of accumulation in a different Other’s perspective. However, in order to break free of such repeated imitation, he focuses on the overturn that takes place the moment the photograph breaks free of the actual object; or in other words, he focuses on the reversal of the image that has passed through the lens.

Photography turns the table on the object in order to fully imitate it, and it is only by doing so that it becomes an independent subject. It is for such reasons that the artist as subject stands in the opposite direction from the world’s gravity. The figure hanging upside down in a joyful playground for children can recover the direction of normality only when he is processed through the lens. However, such transition is accompanied by a reflection on death, the nature of photography. The gesture of the figure hanging on to the world without any ground to stand on reverses the structure of similarity and willingly chooses death inside the image in order to liberate his son as a complete subject. Just as we cannot choose our parents or children, the image of the photograph cannot select its object. However, just as there is more leeway for choice in demise than in birth, photography proceeds toward the realm of freedom, called the image, instead of proving the existence via death. As such, the pain of imitation is blocked in Hanged Man, and the totem of the image of an independent perspective’s birth is constructed.

In short, Bergson asserts that one should hold a position of privilege over objects in order to exercise an actual and new effect on the objects surrounding the body, and that this means that images can affect images. If this reflects the functional acts of the body, the world of images can be linked to our existence through the operation of the perspective that shifts the images into objects. Imitating photography’s means of operation, Ahn’s work format is founded upon a proactive will to intervene in the outside world perceived as image, and to transform it. However, his work is processed through an inevitable change in the face of the technicality of the visual device where such structure collapses.

Slice
At some point, it became inevitable to reconsider the various concepts presented by the classics of photography. It was when the technical state of photography started to expand and dilute into realm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previous structure. Since the Information Ag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images have taken on as its essence the units transposed into symbolized technical codes, instead of eliminating the gap between themselves. Baudrillard explains it is at the state when the medium cannot be defined nor instruct a clear action that the implosion of the medium takes place. In the face of such systematic shift of the medium, Ahn’s work methodology of crisscrossing and investigating the medium traits of photography and its ontological implication encounters yet another round of contemplation.

It started by chance. In 2017, a grand amount of data that he owned was declared impossible-to-restore. 20150208 is the name of not a folder that he created for the work, but a folder of his private photos. The images of a family’s private and daily lives represent photography’s traditional function of celebration, the archived documents of a child’s growing up. In that the object and time can be possessed, and in that the images substitute and call on memory, photography has skillfully fulfilled the role even after its transition into the digital.

However, just as the film of the past’s photography could be permanently damaged through sudden exposure, today’s digital photography is also subject to a similar weakness to bugs. Whereas the photography of the past was the chemical product of the image formed via light and air, and thus damaged by the same elements, today’s photography is the product of bits saved as digital signals, and thus damaged by the same element. While Ahn is enraged by the sudden attack of the bug on his data, he acknowledges the fact that the state of the image conveys a sensation that cannot be generated through an artistic intent.

It brutally deconstructs the image, but bears no intention whatsoever. Intention is an act processed through perspective and body, and bears a specific objective, but the noise of deconstruction generated within a device’s error is merely an error itself. This implosion, which Baudrillard has dubbed a slow terror with no exterior motif, places not only the act of saving but also destruction within a specific intensity. The fear, always making a sudden entrance and yet ubiquitous, emerges and the most significant system of “saving” loses its function.

Therefore, the rupture of saved images has brought a sudden shift in the direction of Ahn’s work thus far. Having become a completely helpless being in the face of the destroyed files, the artist witnessed the treason of images, constantly slipping in the memory of the past. And this treason led him to a cold victory in his ontological battle against photography. This was a destruction of visual perception, and at the same time, an image that has departed image, awakening the true nature of images. The documenting and archiving function of photography, the medium’s historical foundation of being, was hereby dissolved, and the genealogy of perspective and photography on imitation and independence was scattered.

In the subtle serial movements of the daily life captured in 20150208 series, the eyes are all covered, closed, or hidden. What is clearly revealed through this retreat of nullified vision’s system is the slicing of the error that deconstructs even the fundamental function of copying, along with the uniform pixels of the noise. Vaguely supposing it to be the artist’s intent, the audience faces the picture inside a silent exhibition space. However, the moment the audience lays eyes on the lens of Slice! placed in the middle of the space, Bunuel’s fatal blow is thrown into the eyes. What slices our perspective in this sudden moment of perplexity is the explosive of the image. It is also the moment we understand that Ahn’s fragmented photograph is a metonymy for the collapse of visual experience.

Regardless of whether the artist intended it or not, the visually impotent state of Slice provides a route of evolution for the space of where is, which he constructed in order to interpret the relationship with perspective, and also that of Hanged Man, in which he struggled against the dualism of imitation and independence through a lopsided image, and leads them toward a certain state of liberty. This fortunate sense of freedom embraces an advancement in the re-perception of visual experience. Jonathan Crary points out that all circulation and acceptance of visual images does not grant any significant independent identity on a single medium or form of visual representation, but that the new element of perception merely repositions the observer, and that the new element of perception is always re-perceived.

As such, the blow of errors that destruct even the order of the simulacre underlies the nature of today’s images, demanding a new stance of perception toward the medium’s identity. An acute severance of this new visual system that suddenly appeared with neither intent nor manipulation reveals that the element of resistance, Ahn’s persistent challenge against the system by overturning images, is slowly being transferred into a different context. In this sense, his Slice is the image of the existence reflected without a mirror, bearing no collateral of either death or intersection of perspectives. In this shifted structure of verity on photography, Ahn’s ontological contemplation now stands on a new crossroad.

Nayeon Gu l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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